‘마릴린 맨슨’이라는 캐릭터는, 냉철한 전략을 바탕으로 복합적으로 창조된 완벽한 피조물에 가깝다. 그는 처음부터 지나친 자극성과 불쾌한 이미지를 과대포장해서 검열을 자청하고, 이윽고 미국내 반문화의 수퍼아이콘이 된다. 조약골 zo@dopehea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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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쇼크 록커’라는 마릴린 맨슨은 여러 모로 보아 특이한 인간임에 틀림없다. 그가 먼저 주목을 받은 것은 메탈과 하드코어와 테크노의 강한 비트와 각종 소음을 섞어 만든 강력한 사운드였다기보다는 그의 돌출적 행동들 때문이었다. 몸은 각종 문신들과 낙서로 어지럽고 눈알은 양쪽이 짝짝이며 창백한 얼굴에 핏기라고는 전혀 없는 귀신의 형상이 무대에 나타나 괴성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뮤직비디오나 공연을 본 기존 록 팬들은 도대체 저것이 음악인지 아니면 악마를 불러내는 집단 굿인지 헷갈리게 된다.
세기말이 빚어낸 이 분열의 캐릭터는 혼돈이 멈추고 새로운 세기가 열리면 곧 잦아들 줄 알았지만 웬걸, 마릴린 맨슨의 인기는 오히려 더욱 깊어져가고 있는 양상이다. 자신의 돌출적 행동들만을 가지고는 음악인이 오래 존재할 수 없는 법, 앨범을 거듭 내면서 마릴린 맨슨은 음악적 개성을 확립했고 이에 따라 팬층은 더욱 탄탄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마릴린 맨슨에게 따라다니는 오명이 있다. 바로 그가 ‘악마주의 숭배자’라는 것이다. 그의 퍼포먼스를 보면 예전 오지 오스본이 무대에서 박쥐의 목을 물어뜯는 것 따위는 장난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총격 사건이 벌어진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마릴린 맨슨의 추종자들”이라고 밝히는가 하면, 자살을 한 어떤 학생의 방에서 마릴린 맨슨의 음반이 주르륵 나왔다는 기사가 이어진다.
미국의 언론은 마릴린 맨슨을 지목하며 마치 변태적인 정신병자가 사회를 검게 물들이고 있다는 식으로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이라크 민간인들의 머리 위로 열화우라늄탄을 무차별 투하하는 자신들의 폭력중독을 ‘적그리스도 수퍼스타’에게 전가시키려는 듯하다. 마릴린 맨슨을 두고 주류 미국 사회에서는 공공의 적(public enemy)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정치적 색깔을 띤 힙합이 ‘공공의 적’이었지만, 정치적 우익과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90년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비난의 화살은 마릴린 맨슨에게로 옮겨진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마릴린 맨슨이 매우 똑똑한 친구라는 점이다. 그는 음악을 시작하기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플로리다 주에서 잠시 언론인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또한 여러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상당한 달변이다. 마릴린 맨슨을 악마주의자로 비판하는 것은 실은 마릴린 맨슨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그는 언론의 속성과 미국 사회의 구조까지 언급하며 변호하곤 한다.
생각 없는 철부지가 단순히 인기를 끌기 위해 빌려다 쓴 무생물이 아니라, ‘마릴린 맨슨’이라는 캐릭터는 냉철한 전략을 바탕으로 누군가 복합적으로 창조해낸 완벽한 피조물에 가깝다. 그는 처음부터 일부러 지나친 자극과 불쾌한 이미지를 과대포장해서 선전하고, 이어 검열을 당하게 된다. 이런 의도된 검열이 시작되면서 그는 곧 자유의 화신으로 돌변하게 된다. 그의 앨범이 판매금지를 당하고 순진한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안티팬들이 많아지면, 이에 비례하여 그의 인기는 오히려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악마의 불사신’이 되는 것도 실은 우익의 공격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측면이 강하다. 가는 곳마다 소란과 소동을 일으키고 언론의 표적이 됨으로써 스스로 반문화의 표상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언더그라운드의 수퍼스타가 된 것이다.
그는 언론의 공격을 받고 그냥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역공의 방식을 취한다. 즉 미국 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위선자들을 까발리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미국 연예산업이 얼마나 천박한지 공격해 들어간다. 마치 그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식이다.
그런데 사실 마릴린 맨슨이 반대하는 기독교는, 세계의 중심으로 군림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연예산업 즉 할리우드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앨범 제목으로도 사용된 ‘할리우드’는 마치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처럼 모든 것을, 기술과 문명 심지어는 인간의 정신까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리고 이런 자본의 요구 앞에 꼭두각시처럼 행동하는 연예인들과 그들에 눈이 팔린 대중들은, 마릴린 맨슨이 보기에 이미 죽어버린 시체에 불과하다. 마릴린 맨슨은 이런 시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려는 것일까.
그는 음악계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딘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경계에서 우물쭈물 거리다가는 그냥 추락해버리기 십상이다. 굳건하게 자신의 기지를 구축해놓아야 그것을 발판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 마릴린 맨슨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팬들과 솔직히 대화하며, 특히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소년층에 급속히 파고들 수 있었다.
마릴린 먼로와 찰스 맨슨을 합친 이름답게, 그에게는 화장빨이 살아있는 요염한 여성과 살인마 남성을 섞어놓은 중성적인 이미지가 뒤섞여 강렬하게 작용한다. 마치 천사와 악마를 함께 보는 것 같다. 삐쩍 마른 몸매에 나있을 법한 체모를 모두 깎아버리고 피색깔이 나는 짙은 립스틱을 칠한 것을 보면 마치 여자 같기도 하지만, 끓어오르는 욕망을 파괴적으로 분출시킨다는 점에서는 난폭한 황제나 강력계 형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천사의 날개를 달고 파란 하늘로 날아오르는 흰 악마 같다고나 할까. 경계에 서있는 것 같지만 강한 흡인력을 갖고 경계 양쪽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이런 이중적인 이미지 메이킹이 성공한 것을 보면, 마릴린 맨슨은 훌륭한 록 음악가인 동시에 철저하고 계산적인 대중문화 전략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그는 마돈나와도 비견될 수 있다.
마릴린 맨슨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팬층을 살펴보자. 계급적 인종적으로 그의 팬층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은 백인 소년들이다. 특별히 불우한 십대를 보낸 것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중산층 아이들이 갖는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을, 마릴린 맨슨은 악마주의에 대한 탐닉을 통해 자신에 대한 지지로 전화시켜내는 영악함도 갖추고 있다. 니힐리스트들의 염세적 좌절이 응축되면 거대한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모의 권유로 기독교 학교를 다녀야 했던 어린 브라이언(그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조용히 숨어서 비밀결사를 모으고 반란을 도모하는 일부 고뜨(goth)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역할모델이기도 하다(고뜨족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글을 참고할 것). 이들과 함께 가치관의 전복을 추구하는 마릴린 맨슨에게 팬들은 열광적인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어둠의 철학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 기괴한 백인 청년이 ‘록의 적그리스도’라는 위치에 오른 것은 90년대 중반이다. 이 시기의 많은 백인 중산층 아이들은 (정치색이 탈각된) 힙합에 열광하기 시작한다. 마치 기독교 가정의 아이들이 마릴린 맨슨이라는 악마를 일부러 찾아다녔던 것처럼, 이제 백인 아이들은 아예 백인문화를 무시하고 그 대신 흑인들의 경험과 문화 등을 노래하는 힙합을 찾아다니는 된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보석과 권총과 벤츠를 뽐내며 과도하게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힙합에 몸을 맡긴 채 흥청망청 퇴폐적인 파티로 기울게 되었고, 마릴린 맨슨은 어두운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또 한 부류의 아이들을 이끈 셈이다. 이들에게 천사의 우아함과 악마의 파괴적 에너지를 두루 맛볼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 것이다. 욕망의 분출은 선악의 경계를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릴린 맨슨의 공연을 보며 체험하게 된다.
출처 : 전설의마법진 (http://cafe.daum.net/dooridooribambam) / 흑마법 / astral maker 님의 글 / 날짜 : 2003.10.22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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