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반기독교 독재주의자로 보는 이론
저는 성경에 있는 그대로 짐승의 수이면서 사람의 수라고 했기 때문에 짐 승은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반항하는 반기독교자이기 때문에 반기 독교 독재주의자는 모두 666에 해당하는 적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봅니다. 네로, 레닌, 스탈린, 히틀러, 김일성, 반기독교 독재주의자는 사단의 충 복입니다.
17) 사이비 단체로 보는 이론
외모가 양과 같다고 했으니, 곧 기독교의 형태를 가지고 활동한다는 것이 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용의 말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짐 승을 한 개인으로 보기보다는 기독교의 단체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W.C.C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선명, 박태선처럼 기독교의 이름을 가지면서도 기독교가 아닌 단체들이 여기에 속 한다는 점이다.
18) 상징으로 보는 이론
본구절에서 요한의 질문은 '사람의 수니'라는 부분까지이고, 나머지 부분 은 그것에 대한 해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본 구절에서 666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거짓 종교이다. 이 제 우리는 이 구절을 요한 당시의 독자들이 읽었던 것처럼 해석해 보기로 하자. 지혜있는 그는 그 짐승의 수 곧 '사람의 수'를 세어보라. 그런데 그 숫자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회와 전 역사를 통해 존재하는 교 회시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666이라는 숫자는 완전수 777에 가깝기는 하지 만 결코 그것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지 않는가? 만약 참되고 완전한 것을 상징하는 숫자가 7이라면 거짓 종교는 6이라는 숫자로 표현될 수 있지 않는 가? 따라서 우리는 666을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즉 이 숫자는 신 약시대 때 온 세상을 대적하는 모든 거짓 종교 즉 적 그리스도의 권세를 상 징한다. 그런데 이 짐승의 수는 단순한 6도 66도 아닌 완전히 채워진 666이 니, 이 는 완전수인 7에서 1일 모자란 불완전한 수 6을 3개 포개 높은 것으 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완전에 대한 마귀적인 모방, 현혹성, 환난, 저주 등 을 의미한다. 결국 666은 하나님의 완전함을 상징하는 777에 반대되는 숫자 이다. 따라서 이 숫자는 하나님의 의에 미달하고 당신의 주권에 도전하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뜻하고 있다.( 마이클 윌콕, 이종일역, "역사의 저편 새 하늘과 새 땅", 기독지혜사, 1988, p 167-168. )
수를 센다는 것은 본질을 안다는 뜻이고, 다음에 나오는 "육백 육십 육" 도 질(質)을 표현한 수이다. 그 "수", 곧 "질"이란 것은 말씀의 여러 진리 가 저들에게서 거짓화 되었다는 표현이다. "짐승의 수"란 말씀의 확증, 곧 그 교리와 신앙을 확증하는 특질을 뜻하고, "666"이란 원칙적으로는 선한 속한 척하는 거짓된 교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666"의 뜻이 이같이 표현되 는 것은, 여섯은 셋의 곱수인데, 셋의 충만이나 전부를 표현하므로 진리를 전제로하는 수요, 선과 진리의 결혼을 표현하는 수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여섯은 말씀에 속한 여러 진리를 표현하나, 여기서는 거짓화된 그 교리들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또 "666"은 여섯의 세 겹인데, 세겹은 완결을 뜻하므 로, 그들에게 함께 한 선을 가장한 모든 교리가 온전히 파괴된 것이란 표현 이다.( 임종은, "열어 놓은 계시록", 도서출판 소망사, 1989, p 215. )
그 수가 사람의 수라고 하며 따라서 사람이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으 로 말하였는데 요한계시록은 언제나 문자적인 뜻이 아니라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손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불완전수 6의 삼중 적 표현으로 666이 나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이순한, "요한계시록강해",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5, p 283. ) 오늘 우리의 견해로는 그것을 상징적인 숫자로 보는 것이 계시록의 문서 적인 성격을 볼 때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상징으로 볼 때 불완 전 숫자 6(7에서 하나 모자라는 수)이 세 개 모인 것으로서, 마귀의 수, 불 완전의 수, 인본주의 수인 것이다. 777이 하나님의 삼위일체 수라면 666은 마귀의 삼위일체 수이다. 마귀는 언제나 모자라고 실패하는 것이다. "실패 에 실패에 실패"를 나타낸다(Hendsiksen) 그것은 불완전의 삼위일체다(T. Torrance).( 박수암,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 184. )
13:18의 말씀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절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666의 의미는 6이란 완전 숫자인 7에서 하나가 부족한 숫자이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레 중 엿새를 일해야 했 으며 노예도 다만 6년을 일했고 밭도 6년을 사용한 뒤에는 7년째는 쉬도록 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짐승의 숫자가 6을 세 개 나란히 배열한 수자 란 점이다. 이것은 인본 주의의 극단을 말하며 마귀의 삼위일체 수이기도 하다.( 신성종, "요한계시록강해", 정음출판사, 1983, p 99. )
우리는 이 예언을 신약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의, 구조나 또는 요한계시 록의 나머지(예를 들면, 종말까지 인내하라는 가르침) 부분에서 따로 떼어 내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복음에 무엇을 덧붙이 는 것이며, "오직 믿음으로만"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로만"이라는 원리들을 이 시대의 마지막 날에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원리라고 간주하여 내팽개쳤 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의 편협한 예언 해석에 근거 하여 어떤 행위를 그 원리들에 추가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을 제대로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원히 구원받은 자들을 인친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반면에 짐승의 표는 불경건과 불신에 대 한 특징으로 보는 것이다.( 그레엄 골즈워디, 김영철역, "복음과 요한계시록", 한국성서유니온, 1991, p. 195-196. )
이 숫자를 단순한 상징으로 보는것도 가능하다. '예수'를 헬라어로 쓴 이 예수스란 단어의 숫자 가치를 합산해 보면 888이 된다. 모든 수가 완전 수 인 7을 넣고 있다. 그러나 666은 그 반대로 모든수가 7에 미달되고 있다. 즉 이 수는 어떤 개인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의에 부족한 사람들을 가 리키는 것 같다. 본문의 숫자가 특정한 한 개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가 리킨다고 생각하면 이 해석은 더욱 합리성을 띄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요 한은 우리에게 중생치 못한 사람은 항상 악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범사마다 짐승의 표가 붙어있다. 즉 그리스도가 없는 모든 문화는 불가향력적으로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것이다.( 틴텔주석, 1983. )
666이라는 수를,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힘이 악한 영에 의하여 인도될 때 행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나타내 주는 상징적인 수로, 그리고 짐승의 힘이 가장 지고한 발전단계에 도달하고 인간의 모든 문명과 예술과 노래와 과학 과 이성이 하나로 연합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허무맹 랑한 것으로 간주하게 하고 미래의 삶에 대한 소망을 현세의 행복을 손상시 키는 것으로 간주하게 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수로 해석하고자 한 다. 그때 세속적인 힘의 영향력은 절정에 이를 것이며, 오직 참된 지혜자만 이 신앙의 세계와 무신앙의 세계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인식하게 될 것이 다.( 베이커 주석, 기독교문사, 1988, p 560. )
본문이 왜 하필 666을 말했는가? 그것은 우상이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함이다. 만약 하나님의 숫자라면 7이다. 그리고 7이 세 번이면 완전한 하나님이다. 6은 7에 못미치는 숫자로서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이적 을 행하고 신(神)인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하나님까지는 못미친다는 것이 다. 그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의도를 망각하고 666 숫자 그 자체가 마치 신비적인 숫자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바른 성경해석 에 근거하지 못한 불건전한 종말론이다.( 한정건,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p 185. )
우리가 이제 계13장을 통해서 얻어야 할 중요한 것은 짐승과 우상을 섬겨 그 표를 받느냐 하나님을 섬겨 하나님의 표를 받느냐 또는 짐승의 표를 받 고 멸망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표를 받아 영생을 얻는냐 하는 두가지의 일 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표를 받을 수 없듯이 짐승을 섬기지 않으면 짐승의 표를 받을 수 없다. 짐승을 섬기지 않 고 표만 받는 것은 짐승의 표가 아니다. 짐승의 표란 반드시 짐승과 우상을 섬기고 받는 것이다.( 김수영, "666을 이긴 사람들", 소문출판사, 1991, p 81. )
666은 '상징수'로 보아야하고 결코 666의 문자적 표나 마크로 보면 안된 다. 666의 해석을 강조하지 말고 666의 상징자인 짐승, 거짓선지자를 이길 수 있는 신앙을 강조해야 한다. 진정한 신앙은 어떤 제도의 변화, 정치의 변화 체제의 변화속에서라도 다니엘처럼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신앙의 훈련 과 연단에 관심을 둘뿐이며 미래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선한 목자 여호와가 우리를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천정웅, "휴거와 666의 정체", 월간 현대종교 편집부, 1991, p 47. )
퍼온 곳 : 전설의마법진 (http://cafe.daum.net/dooridooribambam) / 흑마법 / mana 님의 글 / 날짜 : 2002.07.2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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